그 옛날 추억의 "검정 고무신"(1~5화) - (3화) 비 오는 날의 철학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3화) 비 오는 날의 철학



장마철, 검정 고무신은 물을 머금고 무거워진다. 물이 새는 신발 속에서 철수의 발은 차갑게 얼어간다. 하지만 비는 모든 것을 씻어내고, 신발은 깨닫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비 오는 날, 검정 고무신이 발견한 삶의 진실.



장마의 시작

여름이 왔다. 그리고 비가 왔다. 처음엔 보슬비였다. 나는 철수의 발을 감싼 채 빗방울을 맞았다. 톡톡톡. 내 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시원했다.

"비다, 비!"

아이들이 소리쳤다. 누군가는 우산을 펼쳤고, 누군가는 그냥 뛰었다. 철수는 우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뛰었다. 나는 철수와 함께 물웅덩이를 가로질렀다.

처음엔 괜찮았다. 고무신은 원래 물에 강하니까. 하지만 비는 계속됐고, 점점 세졌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며칠째 비가 내렸다. 골목길은 진흙탕이 됐고, 하수구는 넘쳐흘렀다. 나는 진흙 속을 헤엄치듯 나아갔다. 철수의 발은 차가워졌고, 나는 물을 머금어 무거워졌다.


물이 새는 신발

문제는 내 밑창이었다. 너무 많이 닳아서, 구멍이 뚫렸다. 처음엔 작은 구멍이었다. 하지만 비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쪽쪽쪽.

철수가 걸을 때마다 내 안에서 물소리가 났다. 철수의 양말은 흠뻑 젖었고, 발가락은 쭈글쭈글해졌다. 나는 미안했다. 나는 신발인데, 발을 지켜주지 못했다.

"엄마, 신발에 물 들어와."

"...참아라. 곧 비 그칠 거야."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일주일째, 이주일째, 비는 계속됐다. 나는 매일 밤 베란다에 놓여 물을 빼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또 젖었다. 나는 절대 마르지 않는 신발이 됐다.


비교와 질투

학교 현관에서 나는 다른 신발들을 봤다. 민수의 프로스펙스는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 물 한 방울 안 들어갔다. 영호의 장화는 아예 무릎까지 올라와 완벽하게 방수됐다.

그리고 나. 물이 철철 새는 500원짜리 검정 고무신.

"너희 신발 좋겠다."

철수가 중얼거렸다. 나는 처음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걸 느꼈다. 나는 철수를 지키지 못하는 쓸모없는 신발이었다. 차라리 새 신발이었다면, 적어도 물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철수에겐 새 신발을 살 돈이 없었고, 나에겐 밑창을 새로 할 능력이 없었다. 우리는 그저 젖은 채로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폭우의 날

어느 날, 정말 큰 비가 왔다.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폭우였다. 학교는 일찍 파했고, 아이들은 부모님이 데리러 왔다.

하지만 철수의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일하러 가셨으니까. 철수는 혼자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었다. 나는 철수의 발을 감싼 채, 폭우 속을 나아갔다.

물은 발목까지 차올랐고, 나는 완전히 잠겼다. 철수의 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그저 철수의 발을 감쌀 뿐이었다.

"...춥다."

철수가 떨었다. 나도 춥다, 철수야. 하지만 우리는 걸어야 한다. 집까지 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골목 모퉁이를 돌 때, 철수가 미끄러졌다. 철퍼덕! 진흙탕에 넘어졌다. 철수는 일어서려 했지만, 다시 미끄러졌다. 나는 밑창이 너무 닳아서 마찰력을 잃었다.

"...제기랄."

철수가 욕을 했다. 처음 듣는 욕이었다. 나는 알았다. 철수가 지쳤다는 것을. 가난이, 비가, 그리고 나 같은 신발이 철수를 지치게 했다는 것을.


우산 없는 아이들

집에 도착했을 때, 철수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엄마는 아직 집에 안 오셨고, 철수는 혼자 젖은 옷을 벗었다. 나는 현관에 던져졌고, 물이 철철 흘러내렸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인간 세상엔 '우산 있는 사람'과 '우산 없는 사람'이 있다. 우산 있는 사람들은 비를 맞지 않는다. 그들은 깨끗하고, 따뜻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우산 없는 사람들은 비를 온몸으로 맞는다. 그들은 젖고, 춥고, 진흙투성이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신발, 나 같은 검정 고무신은 물이 새고, 무거워지고, 냄새가 난다.

세상은 우산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백화점, 학원, 깨끗한 식당. 그곳엔 젖은 신발을 신은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비가 씻어낸 것

하지만 이상했다. 비가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깨끗해졌다. 진흙도, 먼지도, 때도 모두 빗물에 씻겨 내려갔다. 나는 낡았지만, 깨끗했다.

어느 날, 비가 그쳤다. 하늘이 개고,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베란다에 놓여 햇볕을 쬐었다. 따뜻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였다.

철수가 나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어? 냄새 안 나네."

그렇다. 비는 모든 걸 씻어냈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모두. 그리고 남은 건 깨끗한 나, 검정 고무신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물이 새도, 낡았어도, 그래도 나는 철수의 발을 감쌀 수 있다. 완벽한 신발은 비를 막지만, 불완전한 신발은 비와 함께 걷는다.

그게 더 정직한 거 아닐까.

프로스펙스는 비를 막지만, 땅의 느낌을 모른다. 나는 물이 새지만, 빗물의 차가움을 안다. 철수의 발이 얼마나 추운지, 장마가 얼마나 긴지, 우산 없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


나의 생각!

완벽함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방수 신발은 빗물을 막지만, 빗물의 의미를 모른다. 물이 새는 신발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비의 차가움을, 장마의 길이를, 우산 없는 삶의 무게를 안다. 당신의 결점은 당신을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느끼게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게 더 인간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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