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추억의 "검정 고무신"(1~5화) - (5화) 세월의 무게

안녕하세요? '독거놀인'입니다.

(마지막5화) 세월의 무게




5년째, 검정 고무신은 더 이상 신발의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철수는 고등학생이 됐고,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다. 낡은 신발과 함께 늙어가는 철수의 청춘. 검정 고무신이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결국 닳아 없어진다는 것. 하지만 그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



닳아가는 것들

1983년, 나는 5년째 철수의 발을 감싸고 있었다. 아니, '감싸고 있다'는 표현도 과하다. 이제 나는 거의 형체가 없었다. 밑창은 다섯 번 갈았고, 옆구리는 헝겊 조각으로 덧대어졌다.

내가 원래 검정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햇빛에 바래고, 빗물에 씻기고, 땀에 절어 이제는 회색과 갈색이 섞인 무언가가 됐다.

철수도 변했다. 키는 훌쩍 자랐고, 목소리는 굵어졌다. 하지만 발 사이즈는 그대로였다. 255mm. 나는 여전히 철수의 발에 맞았다. 아니, 철수의 발이 나에게 맞춰진 건지도 모른다.

"철수야, 이제 그 신발 버려. 새 거 사자."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신을 만해요.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나는 이미 신발이 아니라 '신발이었던 무언가'였다. 하지만 철수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왜일까?


입시의 무게

철수는 고3이 됐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다. 매일 밤 늦게까지 공부했고, 주말엔 학원을 다녔다. 나는 철수와 함께 학교, 학원, 독서실을 오갔다.

"서울대 가야 해. 그래야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철수가 중얼거렸다. 나는 철수의 발 아래서 그 무게를 느꼈다. 가난의 무게, 기대의 무게, 미래의 무게. 그 모든 무게가 철수의 어깨를, 그리고 나를 짓눌렀다.

어느 날, 철수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넘어졌다. 피곤해서였다. 나는 밑창이 너무 닳아 마찰력을 잃었고, 철수는 계단에서 굴렀다.

"아!"

철수의 무릎이 까졌다. 피가 났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끄러지는 발을 잡아줄 수도, 넘어지는 몸을 보호할 수도 없었다.

"...제기랄. 이 신발..."

철수가 나를 벗어 던졌다. 나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 드디어 버려지는구나. 5년 만에.

하지만 철수는 다시 내려와 나를 주웠다.

"...미안."

왜 사과하는 거지, 철수야.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이미 수명을 다했어. 5년은 500원짜리 고무신에겐 너무 긴 세월이야.


동창회에서

여름방학, 철수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나는 철수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민수가 왔다. 대학생처럼 차려입고, 최신 나이키를 신고. 영호도 왔다. 역시 새 운동화를 신고. 그리고 철수는... 나를 신고 왔다.

"야, 철수야! 오랜만이다!"

"어, 민수야."

"너 아직도 그 신발 신어? 야, 우리 고등학생이야. 좀 새 거 신어라."

철수는 웃으며 대꾸했다.

"이게 편해서."

거짓말이었다. 나는 전혀 편하지 않았다. 발가락 끝이 닿는 부분은 구멍이 뚫렸고, 뒤축은 주저앉았다. 하지만 철수는 그렇게 말했다.

민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다. 그는 평생 좋은 신발만 신었으니까. 신발이 '끝까지 가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


마지막 수선

가을이 왔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밑창은 완전히 닳아 구멍이 뚫렸고, 옆구리는 찢어져 펄럭였다. 철수 엄마가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이제 진짜 못 신겠다. 버려야지."

"...조금만 더요."

"철수야, 네가 대학 가면 좋은 신발 사줄게. 그러니까 이제..."

"엄마."

철수가 나를 꼭 쥐었다.

"이 신발이랑 같이 대학 가고 싶어요. 이 신발이 저랑 5년을 함께했잖아요. 학교도, 학원도, 운동장도 다 같이 갔잖아요. 그냥... 함께 가고 싶어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철수의 손 안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느꼈다. 500원짜리 검정 고무신에게 인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정.

철수 엄마는 마지막으로 나를 수선했다. 헝겊을 덧대고, 실로 꿰매고, 고무 접착제를 발랐다. 밤새도록. 새벽녘, 나는 다시 태어났다. 아니, 다시 '신발'이 됐다.


수능 시험장으로

11월, 수능 시험 날이 왔다. 철수는 나를 신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우리는 함께 걸었다. 5년간 함께 걸은 그 모든 길들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시험장 입구에서 철수는 나를 내려다봤다.

"...고마워.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이 말했다. 낡고, 닳고, 찢어지고, 꿰매진 내 몸이. '나도 고마워, 철수야. 네가 5년간 나를 버리지 않아서.'

철수는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복도에 놓인 신발장에 있었다. 옆에는 깨끗한 나이키들, 아디다스들, 최신 운동화들이 즐비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저게 뭐야? 신발이야, 걸레야?"

"저걸 아직 신고 다니는 애가 있어?"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철수와 5년을 함께했다. 그들이 뭐라든, 나는 철수의 신발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시험이 끝난 뒤

시험이 끝났다. 철수가 나를 다시 신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차가웠다. 철수는 한참을 걸었다. 어디론가.

한강 둔치였다. 철수는 벤치에 앉아 나를 벗었다. 그리고 한참을 나를 바라봤다.

"...고생 많았어."

철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놀랐다. 신발 때문에 우는 사람을 처음 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진짜 많이 신었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될 것 같아."

아, 이제 진짜 이별이구나. 나는 알았다. 철수가 대학에 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곳엔 나 같은 낡은 검정 고무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5년간 철수와 함께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신발이었다.


나의 생각!

모든 것은 닳는다. 신발도, 사람도, 인연도. 하지만 그 '닳는 과정'이 아름답다. 5년간 함께 걷고,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쌓은 시간. 그건 어떤 새 신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당신의 삶에 '낡았지만 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진짜로 살아온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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